밀프과 쿠거

누군가는 항상 바닥에 엎드린다.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수 있다. YOLO를 실천한 지난 2년 동안 배운 것은 최고의 섹스는 열정과 권력이 섞여있는 역할극이라는 것이다.

주도하거나, 아니면 압도당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정답은 없다. 당신을 흥분시키는 모든 것, 당신의 성적 취향과 패티시, 그 어떤 것이든 괜찮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고 자유로워지거나, 아니면 끈을 붙잡는 것도 가능하다.

"MILF와 만나는 게 내 꿈이었어." 괜찮은 남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나이 든 여자를 잠자리로 데려가 그 판타지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서 지우는 것이다.

남자는 두 종류로 나뉜다. 노예와 주이님.

순종적인 남자들은 이끌리거나 삼켜지길 원한다.

"난 젊은 남자들을 아침밥처럼 먹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항상 흥분한다. 상상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내 젖은 입술이 그들의 단단한 자지를 빨고 핥으며, 강아지처럼 혀를 놀리는 장면, 손가락으로 그들의 자지를 오르내리며, 손으로는 그들의 불알을 꽉 잡는 장면, 그들의 입술이 긴장하며 목구멍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오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쿠거이자 MILF다. 거기에 아시아인의 매력까지 더한 치명적인 조합이다. 나는 그들의 꿈이 현실로 나타난 존재다. 일본 포르노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손으로 움켜쥐기에 완벽한 모래시계 몸매를 가진 여성인 것이다.

'쿠거'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MILF는 다들 알 것이다.

처음 'MILF'라는 단어를 들은 건 아메리칸 파이에서였다. 핀치가 스티플러의 엄마와 잠자리를 가진 장면. 어리석지만 섹시했던 그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외모적으로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뭔가 음란하고 흥미진진한 느낌이 있었다.

가끔 나는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말을 실수로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상기되는 것이 싫어, 그런 실수를 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사회가 기대하는 틀이 아닌 서로의 마음과 몸으로 연결되길 원한다.

처음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내 나이대는 25-35세였다. 서른다섯 살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더 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난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고, 그들의 미디어와 사고방식에도 공감했다. 독서, 소셜 미디어,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내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에 속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아시아인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까지 내 외모에 더해지면서, 나는 충분히 30대 초반으로도 보일 수 있었다.

나이차별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우리는 고정관념이 사라져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고속 와이파이와 스마트폰 화면은 사회, 국가, 전통이라는 벽을 허물었다. 정말로, 옛 방식은 무너지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덕분에 젊은 세대들이 더 빨리 나이 들어가고 있고, 남은 우리의 과거는 잊혀지고 있다. 이제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왜, 언제부터 연상인 여자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라고 L이 말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BB에서였다. 스물 세 살에 부산 출신의 한국인 남자였다. 그의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섹스 토크와 번역기만 있으면 대화하기엔 충분했다.

그의 사진은 정말 핫하고 귀여웠고, 그의 프로필은 나이 든 여성을 타겟으로 해서 그 독특함을 더했다.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다. 당시 나도 Hinge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셋의 학생과 채팅 중이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MILF를 좋아하고, 내 섹시한 얘기들을 듣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과 채팅을 하면서 느끼는 스릴은 거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우리가 있었다면 우리의 세계는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음에도, 이 시대와 데이팅 앱 덕분에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정말 사실이었다. 그들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연령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스무 살 이상이나 나는 나이 차는 너무 클 것이다. 그들은 아직 세상에서 막 태어나서 살기 시작한 강아지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 꿈, 야망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흥분시키고 말았다.

“MILF랑 FWB를 갖는 게 내 로망이야. 너랑 영원히 친구로 지내고 싶운대, 어때?” L이 말했다. “너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싶고, 우리의 공통점을 한번 찾아보고 싶어.”

“언제부터 MILF를 좋아했어?” 내가 물었다. 설문조사라도 할 심정으로 데이터를 모으는 중이었다.

“글쎄…아마 18, 19살? 갑자기 연상 여자가 좋아졌어,” 그가 말했다.

“MILF 포르노 같은 거 많이 봤어?”

“MILF에 미친 후로 많이 봤지…,” 그가 말했다. “여자친구는 많았어. 근데 매년 바뀌기도 했고, 섹스가 별로 안 좋았더라고. 딱딱해지지가 않던데.”

“왜?”

“그래서 병원에 가서 약을 좀 받았어.”

“무슨 약을 받았는데?”

“하루에 여섯 번씩 혼자 만져 댔거든. 어린 여자랑은 섹스를 못하겠는거야. 근데 너같은 연상 여자랑이 있으면 쉽게 딱딱해져.”

"그래…그래서 의사가 뭐래?"

"자제하라던데. 만지지 말래. 그래서 약도 줬어."

심각해 보였다.

L은 발기부전으로 고통받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스물셋이라면, 움직이는 건 뭐든 잡아서 섹스를 즐길 나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다. 다른 스물네 살의 '체리 보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포르노 중독.

그게 문제일까? 그게 정말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나는 자라면서 거의 매일마다 자위를 하거나 섹스를 했다. 물론, 나는 자지가 없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걸 가진다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재밌진 않은 모양이다.

"내가 남자라면 매일 자지 가지고 놀았을 것 같은데," 내가 H에게 말했다. "언제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장난감이 있다고 상상해봐."

침대에 앉아 아이패드를 보던 H는 고개를 저었다. "너만 그렇게 생각할 걸."

"그래, 항상 발기돼있으면 아프긴 하겠지..." 내가 생각했다. "근데 내가 남자아이였으면 진짜 보이는 모든 구멍에다 다 넣어봤을 거 같은데."

그렇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다. 나는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에 손을 대고, 코를 들이대며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내 딸이 뭐든지 만지려 할 때 종종 꾸짖곤 했지만, 그게 인간 본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멍들. 영롱한 구멍들. 내 변태적인 사고가 사랑하는 또 다른 것들 중 하나이다. 잠시 대화 주제에서 벗어났으므로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L은 스타킹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 다양한 란제리들과 장난감, 특히 목줄을 사랑했다. 우리가 한국에 가기 전 3개월 동안 우리는 우리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했고, 그는 매일마다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은 뭐 입었어?" 그가 자주 물었다. 그는 바리스타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커피 내조와 원두, 향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와인 제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커피와 카페 사업이 대세였다. 그래서 카페 투어와 인스타그램용 데이트 장소가 주말에 노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남자들이 좋다. 그들의 일과 일에 대한 열정을  듣는 것이 그들의 섹시함을 더해 주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뇌는 새로운 섹시함이다.” 그리고 여성은 더 사피엔스처럼 굴면서 좋은 두뇌를 좋아했다.

“벤치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 아니면 사람들이 걷는 근처에서 섹스를 하고 싶어. 그리고 네가 긴 코트를 입고 보지와 항문에 딜도를 하나씩 넣고 있는 것도 보고 싶다.”

“오우. 앱으로 조종하는 작은 진동기를 쓴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남자들이 근처에 있을 때 리모컨으로 딜도 진동을 키는 거지.” 그가 말했다.

“남자들이 보고 흥분하면 어떡해?” 내가 물었다.

“아니면 네가 남자 화장실에서 열심히 자위하게 할 수도 있고.” 그가 말했다.

“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신음소리를 엄청 내다가 가버리고 있을 때 남자들이 듣고 있을 텐데. 걔들이 우리 다리를 볼 수도 있고 네가 날 따먹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라고 내가 말했다.

“널 점점 더 내 껄로 만들고 싶어. 기차 안에서 진짜 강간을 하고 싶어 미치겠어. 바닥에 보짓물 다 흘리게 만들어 버리고 진동기로 의자를 다 젖게 만들어 버릴까.”

이 말에 중독이 되버려서 내 보지가 젖어 버렸다. 이 변태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일하는 동안 너 밖에 생각이 안날 것 같애.” 그가 말했다.

섹스할 방법, 놀아줄 방법, 유린시킬 방법만 생각나게 만드는 남자들과 그들의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암컷 퓨마인 내게 이 말은 마치 명예의 훈장 같은 말이었다. 

나도 그걸 원했다. 섹스에 미쳐 멍청해진 기분. 오직 본성만이 남고 이성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상태를 말이다. 

우리는 동물처럼 짝짓기를 할 것이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며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아마 세 번 연속으로 쌀 수 있을 것 같애.” 그가 말했다. “진짜 네 가슴이랑 팬티에 내 얼굴 문지르고 싶어. 팬티가 젖는 걸 느끼면서 핥고 밤새도록 키스하고 핥고 빨고 싶어요.”

“네 손을 내 등 아래쪽, 엉덩이 위쪽, 다리 사이로 느끼고 싶어.” 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딥키스로 시작하고 싶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 한 팔은 네 허리를 감싸고 다른 팔은 네 엉덩이를 잡으면서 말이야. 미치겠네, 이제 네 메시지를 받으면 참기가 힘들어.”

“딱 하룻밤만 네가 날 가질 수 있어.” 내가 말했다.

“H를 잊게 해주고 싶어.” 그가 말했다.

“옷을 입혀도 되고 네 마음대로 벗겨도 돼. 날 묶어줘. 내 몸에 오일이랑 젤도 발라줘. 예쁜 란제리도 가져갈께."라고 내가 말했다.

“네가 임실할 때까지 안에다 싸줄께. 네 구멍 내 껄로 채워줄께.”

“부드럽게 다뤄줘."내가 말했다.

“아. 당연하지. 핥는 걸로 시작해줄께. 네가 진짜 아프거나 멈추고 싶으면... 멈추는 단어같은 걸로 규칙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네...”

“안전 단어. 그래. 하나 필요하겠네," 내가 말했다. 

“그 말을 네가 하면 내가 멈출게. 근데 그만이라고 말하면 더 열심히 할 거야."라고 그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대답했다. 그는 항상 영상 통화를 즐겼다. 내 알몸을 보고 싶어하는 동시에, 자기 캠을 빠르게 그의 딱딱한 자지로 바꿨다. 비록 그의 얼굴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매번 가버리곤 했다. 그는 내가 가버리는 걸 보는 걸 좋아했고 특히 내 큰 엉덩이를 좋아했다. 엉덩이를 때리면 그가 미쳐서 열심히 자위를 하고, 내가 그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 내가 그를 제대로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매일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항상 내가 뭘 입었는지 물어보고 내 옷차림을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들은 이야기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가 H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우리가 촬영한 영상을 보며 질투를 하기도 했지만,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자기도 자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마음이 녹는 미소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도 이런 게 처음이었다. 데이트와 단어 게임과 함께 플러팅을 하다가 원나잇을 하고 이후에는 신세대답게 나보다 더 다양한 섹스를 즐기는 이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했다. 20년 넘게 거품 속에 갇혀 살았고, 연애와 섹스 경험도 두 번밖에 없었던 나는 새내기나 다름없었다. 

아기 쿠거는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이야기는 싸구려였다. 게다가 한국인은 순하고 약속과 꿈, 매력이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교훈이 울려 퍼졌고, 전 세계의 여성들이 유령처럼 그 속에서 떠돌아다녔다. 수천 명의 목소리가 숫자, 1, 0, 그리고 낭만적인 몸짓에 대한 디지털화된 이야기로 공중에 떠올랐고, 그 뒤에 숨은 진실은 잔인했다.

“내가 너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어. 귀엽고, 섹시하고, 핫하다. 네가 날 너무 힘들게 해. 네 성격에 대해서 알고 싶어. 우리가 오래 가려면 단순한 섹스보다는 너에 대해 좀 더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애. 그래서 네가 나한테 질렸을 때, 날 떠날까봐 신경쓰여."라고 그는 말했다. “네 성격이 좋은 것 같애. 네 미소도 예쁘고.”

“네가 먼저 날 떠날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다들 그렇다. 문득 깨달았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잠깐이라도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모든 FWB에게 바랐던 것이었다. 

“항상 여기 있을게"라고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 난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항상 곁에 있을 친구인 셈이었다. 그리고 섹스가 끝나면 상대방을 말을 들으려고 그 자리에 있었다. 인생이 잘못되었을 때 불안과 슬픔, 분노를 진정시켜줄 수 있는 귀도 되어주었다. 또는 행복을 나누고 그 대가로 내가 행복을 나누기도 했다. 

“하하, 아니.” 그가 말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야.” 내가 대답했다. 나는 나눌 것이 많았지만 내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어쩌면 내 사명인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작은 행복, 별 하나, 음식 한 접시, 미소도 나누고 싶었다. 

“내가 섹시하고 중년 여성 패티시가 있다고 여러 번 말했잖아. 네가 진짜내가 상상했던 꿈의 여자야.” 그의 말이 날 감동시켰다. 작별 인사 한 마디 없이 떠난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가슴에 파편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한 몇 달 동안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나를 존중해줄 수 있는 친구였다. 내가 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받은 것을 돌려줄 그런 친구 말이다.

그가 쉬는 날에 만나서, 같이 부산을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도 하고, 여러 음식도 먹고, 섹스도 많이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 전, 어쩌면 우리가 약속했던 그 미팅 바로 전, 그는 대화 도중에 사라져버렸다.

달콤한 욕망이 더 높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높은 데서 떨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머리부터 떨어졌다.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고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나는 계획대로 한국에 갔다. 디즈니랜드에 가서 생쥐들과 놀았다. 부산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 묻어 있던 상처가 그의 모습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난 특별한 메시지를 받았다. 

L이었다. 그가 돌아왔다.

Previous
Previous

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