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 번도 더 들려줬던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내가 H와 이런 기이한 삶을  어떻게 해낸 거냐고 주변인 모두가 궁금해했다. 우리는 개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 드물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5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오픈된 관계를 살고 있었고, H와 나처럼 파트너인 동시에 ‘공범’이 되어 서로의 윙맨 역할까지 하는 관계는 아무도 없었다.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우리 그냥 욜로(YOLO) 하고 싶더라고요. 20년 넘게 같이 살기도 했고, 언제나 서로에게 충실했고, 아이도 있다보니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내 주된 설명이었다.

“오픈 관계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라고 사람들이 물어오곤 했다.

“H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나는 남자들이랑 노는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자 하니, “마사지 좋아하세요?”라는 은어도 있었는데, 이건 한국어의 “라면 먹을래?” (즉, 섹스를 제안하는 의미) 같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의도는 분명하기 때문에, 난 항상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곤 한다. H는 내 직설적인 방식에 대해 불평을 하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즐기는 데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나도 여자니까, 데이트를 위해 멋지게 차려입고, 차로 픽업되고,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걸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나? 그의 아내로서 그런 대접을 자주 받진 못했지만, 아이들을 집에 두고 데이트 나가거나 당일 호텔 스테이케이션을 하면서는 그런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다.

지금까지 남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제대로 식사를 대접받은 경우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그 식사들도 H가 여자들에게 쓴 돈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늘 부족했던 터라, 거기에 대해 불평하진 않는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고, 그걸 일일이 기다리기에는 내 성욕이 너무나도 강했다. 내 식사는 오로지 사람 근육과 다른 종류의 ‘육고기’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좀 더 간을 보다가 내게 더 잘 맞는 남자, 그리고 내가 바라던 FWB를 찾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정말 노력했다. 진짜 진심으로.

두 번 정도 남자와 가까워졌었던 적이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또 다시 고스팅을 당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매우 실망했다.

그 남자들은 FWB를 원하지 않았다. 난 우리가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 줄 알았다. 그저 짧고도 강렬한 욕망으로 찬 즐거움과 지적인 성적 교감이 섞인 경험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큰 바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뭘 들었는지 알아? 너보다 더 또라이야,” H가 말했다.

“내 베트남 친구 얘긴데…” H는 침대로 들어오며 말했다. 나는 내 한국인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가장 최근에 찍은 반 나체 사진들로 그들의 하루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사무실에 막 도착했거나 버스나 지하철에 있을 때 사진들을 보내면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 네 FWB가 왜,” 내가 말했다. H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질투가 났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나는 아직도 나랑 잘 맞고, 대화도 통하고, 농담도 주고받고, 함께 밥도 같이 먹고, 섹스도 할 수 있는 그런 섹시하고 성욕 넘치는 남자를 찾지 못했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H는 내가 기준이 너무 높다고 늘 말했다. 게다가 내 취향이 Z세대 쪽이라는 점이 날 화나게 만들었다.

그들의 매력은 그들이 내게 느끼는 매력만큼이나 강력했다. 욕망의 향기가 전자파를 타고 강하게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눈으로는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면서, 성욕에 떡이 된 채로 흔들리는 내 섹스가 담긴 비디오를 훑어보았다. 그 파트너들 대신 우리가 함께 욕망을 만들고 있는 상상도 곁들였다.

“한국으로 와. 언제 한국에 올 거야?” 그들은 자주 물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주 어때?”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내가 H에게 물었다.

“걔가 앱에서 만난 아시아 남자랑 데이트를 했대… 좀 괜찮고 잘생겼다더라고. 근데 그 놈이, 자기 여친이랑 사귄 지 3일밖에 안됐다는거야…” H가 웃었다.

“그래서…?” 나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제 시작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지루하게 할 리가 없었다.

“근데 그 놈은 심지어 결혼도 한 상태였어.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놈 아내가 걔한테  사실은 자기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을 한거야. 그러고는 자기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걔한테 말했대.”

“와 미친. 대박이네…” 내가 말했다. ”말이 안 되는데… 그게 3일 전이었다고?”

아내와의 오랜 관계와 아이까지, 결혼 생활이 한순간에 끝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 남자가 이혼하는데 단 3일이 걸렸다.

“그 놈 아내가 대만 사람이래. 아마 원래부터 레즈비언이었나봐. 근데 여기서 결혼하면서 살려고 그걸 숨긴거지.”

바람 피는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내가 한 가지 배운 것은, 결혼생활이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어떤 가정도 싸움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당신이 보는 완벽한 가정과 깔끔한 하얀 커튼 뒤에는 모두 어두운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연애를 하며 싹 피웠던 로맨스의 불꽃이 사라지면서 먼지처럼 변해버린 뒤에도, 부부를 유지해주는 건 섹스였다. 섹스가 없으면 부부는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끈으로만 이어지게 된다. 결혼이라는 밧줄이 닳아서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이혼율이 더 높은 게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H가 아시아에 있었을 때 내가 저질렀던 온라인 불륜을 고백한 후, 오픈 관계를 제안한 건 바로 H였다. 그게 우리의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줄 탈출구였다. 그가 옳았다. 오픈 관계는 모든 부부에게 주어져야 할 선택지이다. 바람을 피우는 것보다는 이런 방식이 훨씬 낫다. 이혼을 하느니 차라리 이 오픈 관계를 통해 가정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애슐리 매디슨(AM)라는 바람 피우는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사이트가 있다. “인생은 짧다”라는 문구가 이 사이트의 슬로건이다. 불륜은 모두가 필요로 하는 자극처럼 보였다. 몇 년 전, 우리는 뉴스에서 애슐리 매디슨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이트는 간통과 어울리는 재치 있는 이름을 사용해 주목받았었다.

“들었어? 이웃집 피트가 애슐리를 만났데. 애슐리가 누군데? 사람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야. 뭔데 그러면.”

그 사이트가 대중에 노출되었을 때, H와 나는 애슐리 매디슨에서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들을 이해를 못하겠다며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우리가 거기에 가입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H는 먼저 계정을 만들었고 내게도 만들라고 했다. 그때는 이런 데이팅 앱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프로필이 원하는 대로 나오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미끼였다. 프로필은 꽤나 그가 의도한 바와 비슷했다. 태그라인, 몇 장의 사진, 취미와 검색 기준을 고르는 것이 있었는데, 다른 데이팅 사이트와는 달리 성적 취향을 선택하는 옵션도 있었다.

H는 어린 여자들이 아닌 가정주부, MILF, 중년 여성과 같은 H피셜 진짜 여성들을 원했다.

그래,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Ometv의 비디오 채팅에서 즐겼던 섹시한 재미와는 달리, 이런건 내게도 처음이었다. 나는 내 AM 앨범에 도발적인 사진 몇 장을 던져 넣고 어떤 생선들(먹잇감들)이 잡히는지 지켜보았다. 이 차가운 바다에 거대한 상어가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귀엽고 성욕 넘치는 동아시아 남자들 같은 물고기들이 내 미끼를 물지 궁금했다.

AM은 그렇게 바람 피우기 게임이 되었다. 절박한 사람들을 향한 장난 섞인 농담이 돼버린 것이다. 남자들이 올린 태그라인과 프로필은 그렇게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다.

재밌었다. 정말 웃겼다. 그리고 섹시미도 넘치고, 야하기도 했다. 이 속에서내 타입에 맞는 남자들을 찾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를 잃기도 하였다.

이 애슐리라는 곳은 H와 내가 남자들을 갖고 놀면서, 운이 좋은 몇몇과는  실제로 만나기도 하다가, 어떨 때는 더 많은 것을 얻어갔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H와 내가 서로를 지원하는 윙맨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처음으로 각자의 길을 나서는 곳이다. 새로운 상대를 사냥하고, 새로운 살점의 맛을 물색하려는 우리들의 첫 번째 시도였다.

그렇게, 우리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사람들에게 전하자면, 우리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Previous
Previous

쏘세요

Next
Next

퍼레이드